| 2026 청양 관계인구 세미나 후기_강수진(2기) 관계인구, 청양이라는 지역을 오래 좋아하는 방법
누구에게나 '할머니 집' 같은 지역이 생길 수 있을까? 2023년 청양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가장 많이 들었고,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 단어는 ‘관계인구’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관계인구란 '특정 지역에 완전히 이주·정착하지는 않았으나,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 방문, 업무, 관광, 취미, 고향사랑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특정 지역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와닿게 비유하자면 '할머니 집'이 아닐까 싶다. 그곳에 살지는 않지만 1년에 몇 번씩 방문하게 되고, 떨어져 있더라도 그곳의 소식이 들리면 걱정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정겨운 할머니 집이 생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피로 이어진 관계도 중요하겠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하며 경험과 감정을 공유한 수많은 시간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정겹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할머니집처럼 로컬을 오갈 수 있는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일 또한 꾸준히 시간을 들이는 노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
 관계인구가 남긴 질문들, 지원을 넘어 자립으로 지난 7월 11일 청양맛축제에서 열린 청양 관계인구 세미나에 청양의 생산자와 더 테이스트 에디트 수료생,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해 온 청양의 로컬 활동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1기 참여자 김수진 에디터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청양이라는 지역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근황을 나누던 에디터들의 의견도 거의 동일했다. 청양고추로 유명한 지역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알지 못했던 지역에서 생산자를 직접 만나 로컬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액정 속 텍스트만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경험이었다. 현지 사정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청양관광두레와 같은 로컬 네트워크 조직의 도움 덕분에 에디터 활동 전반을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었고, 이들의 활동을 응원한다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인터뷰와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생산자들은 외지 청년들이 로컬에 관심을 가져 준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을여행사 청보리의 전귀정 농부는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줘서 기쁘지만, 표면적인 이야기에 머물렀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향온협동조합의 성욱 농부는 콘텐츠 발행을 넘어 주민사업체와 함께 전통주 생산에도 직접 참여해 주길 바랐지만, 여건이 되는 청년을 찾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로컬 생산자와 에디터 사이에서 중계 역할을 맡아 온 청양관광두레 박영혜 PD는 "이제야 비로소 관계인구를 만들기 위한 기반이 갖춰졌다"고 진단했다. 사업 초반에는 외지 청년인 에디터들에게 현지 사정을 안내하고 생산자를 연결해 주는 것은 물론, 머무를 공간을 마련하고 교류를 이어 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 역시 네트워크 활동가로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청양의 로컬 기업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의 관광상품 기획이 큰 자극이 되었다며, 지원사업이 종료됐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구축한 인프라가 모두 철수하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후속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업 자문으로 참여한 지역다운레이블 장상기 대표는 이제야말로 지원사업에 의존하는 운영 구조를 벗어나 '자립'을 시도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그는 관계인구 형성 로컬 프로젝트의 인상적인 국내외 사례로 제주와 일본 치바현을 소개했다. 제주도는 '한 달 살기'로 잘 알려진 만큼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관계인구를 꾸준히 형성해 왔다. 반면 일본 치바현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출자를 통해 민간 사업체를 설립하고 로컬 정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장 대표는 특히 치바현 사례를 이상적인 모델로 꼽으며, '청양의 생산자'처럼 넓은 범위보다 '전통주'와 같은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독립적인 사업체를 꾸리는 방식을 제안했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나는 더 테이스트 에디트 2기로 참여했고 네트워크 중계를 도운 청년 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지 활동에서는 다른 에디터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동시에 "그래도 나는 현지 사람인데 이 정도밖에 못 하나?", "아무리 해도 로컬 밖의 시선에서 나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따라갈 수 없다"라는 고민이 컸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 사업 외에도 외지 청년과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사업이 전개될 때마다 ‘얼마 있다가지 않을 외지사람들이 괜히 동네를 들쑤시고 다닌다.’라는 토착 지역민들의 볼멘소리를 듣곤 한다. 하지만 굳어진 로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것도 전에 없던 신선한 경험을 가져오는 것 또한 외지 청년들이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큰 문화충격이었고 애정이 어린 청양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준 프로젝트다. 나는 2기 활동 소감에 "어쨌든 나는 열심히 살아가는 청양 사람들이 좋았고, 그래서 청양에 남았다"라고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2026년 서울로 떠난 지금도 여전히 청양 사람들과 로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특히나 2025년 하반기부터 순식간에 불어닥친 AI 열풍 속에서 더 테이스트 에디트 프로그램의 사회적 필요성을 느낀다. 그 지역을 직접 찾아가 생산자들을 만나는 경험이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고 있다. 계절이 바뀐다고 작물이 저절로 자라 식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초가공식품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한 번쯤은 몸으로 느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농부들은 미디어가 그리는 자연처럼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와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인식의 되돌아봄도 필요하다. 농부들은 고집스러울 만큼 농사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는 것을 에디터 활동을 포함한 청양에서 청년 활동가로 여러 농부를 만나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다.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1년의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환경에서 그들은 마을에 몇백 년이나 자리 잡은 두꺼운 느티나무처럼 단단했다. 그래서 때로는 외롭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엔 낯설고 서툴러도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자신의 농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의 콘텐츠는 좋은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농부의 대변자 역할을 했다고 느낀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와 같이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프로젝트가 지원사업 기간 이후엔 추억으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여기에도 재미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언제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서울로 떠난 이유 역시 ‘로컬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보여 준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후속 사업이 이어진다면,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하고 싶다.
| 사진: 황승택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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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청양 관계인구 세미나 후기_강수진(2기)
관계인구, 청양이라는 지역을 오래 좋아하는 방법
누구에게나 '할머니 집' 같은 지역이 생길 수 있을까?
정겨운 할머니 집이 생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당연히 피로 이어진 관계도 중요하겠지만,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하며 경험과 감정을 공유한 수많은 시간이 축적되어야 비로소 정겹다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할머니집처럼 로컬을 오갈 수 있는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일 또한 꾸준히 시간을 들이는 노력이 필요할 수 밖에 없다.2023년 청양에서 일하기 시작하며 가장 많이 들었고, 내가 하는 일을 설명할 때 자주 쓰인 단어는 ‘관계인구’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관계인구란 '특정 지역에 완전히 이주·정착하지는 않았으나, 정기적 또는 비정기적 방문, 업무, 관광, 취미, 고향사랑기부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특정 지역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위해 와닿게 비유하자면 '할머니 집'이 아닐까 싶다. 그곳에 살지는 않지만 1년에 몇 번씩 방문하게 되고, 떨어져 있더라도 그곳의 소식이 들리면 걱정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관계 말이다.
관계인구가 남긴 질문들, 지원을 넘어 자립으로
지난 7월 11일 청양맛축제에서 열린 청양 관계인구 세미나에 청양의 생산자와 더 테이스트 에디트 수료생,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해 온 청양의 로컬 활동가가 한자리에 모였다. 1기 참여자 김수진 에디터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청양이라는 지역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근황을 나누던 에디터들의 의견도 거의 동일했다. 청양고추로 유명한 지역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알지 못했던 지역에서 생산자를 직접 만나 로컬 콘텐츠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액정 속 텍스트만으로 정보를 습득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값진 경험이었다. 현지 사정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청양관광두레와 같은 로컬 네트워크 조직의 도움 덕분에 에디터 활동 전반을 원활하게 이어갈 수 있었고, 이들의 활동을 응원한다는 마음도 함께 전했다.
인터뷰와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 생산자들은 외지 청년들이 로컬에 관심을 가져 준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하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을여행사 청보리의 전귀정 농부는 "우리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줘서 기쁘지만, 표면적인 이야기에 머물렀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말했다. 향온협동조합의 성욱 농부는 콘텐츠 발행을 넘어 주민사업체와 함께 전통주 생산에도 직접 참여해 주길 바랐지만, 여건이 되는 청년을 찾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로컬 생산자와 에디터 사이에서 중계 역할을 맡아 온 청양관광두레 박영혜 PD는 "이제야 비로소 관계인구를 만들기 위한 기반이 갖춰졌다"고 진단했다. 사업 초반에는 외지 청년인 에디터들에게 현지 사정을 안내하고 생산자를 연결해 주는 것은 물론, 머무를 공간을 마련하고 교류를 이어 가는 과정을 통해 자신 역시 네트워크 활동가로서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한 청양의 로컬 기업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의 관광상품 기획이 큰 자극이 되었다며, 지원사업이 종료됐다는 이유만으로 지금까지 구축한 인프라가 모두 철수하는 것은 큰 손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후속 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업 자문으로 참여한 지역다운레이블 장상기 대표는 이제야말로 지원사업에 의존하는 운영 구조를 벗어나 '자립'을 시도해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그는 관계인구 형성 로컬 프로젝트의 인상적인 국내외 사례로 제주와 일본 치바현을 소개했다. 제주도는 '한 달 살기'로 잘 알려진 만큼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관계인구를 꾸준히 형성해 왔다. 반면 일본 치바현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출자를 통해 민간 사업체를 설립하고 로컬 정주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장 대표는 특히 치바현 사례를 이상적인 모델로 꼽으며, '청양의 생산자'처럼 넓은 범위보다 '전통주'와 같은 특정 분야를 중심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 독립적인 사업체를 꾸리는 방식을 제안했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 다음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나는 더 테이스트 에디트 2기로 참여했고 네트워크 중계를 도운 청년 활동가이기도 했다. 그래서 현지 활동에서는 다른 에디터들보다 유리한 위치에 있었지만, 동시에 "그래도 나는 현지 사람인데 이 정도밖에 못 하나?", "아무리 해도 로컬 밖의 시선에서 나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따라갈 수 없다"라는 고민이 컸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 사업 외에도 외지 청년과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사업이 전개될 때마다 ‘얼마 있다가지 않을 외지사람들이 괜히 동네를 들쑤시고 다닌다.’라는 토착 지역민들의 볼멘소리를 듣곤 한다. 하지만 굳어진 로컬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것도 전에 없던 신선한 경험을 가져오는 것 또한 외지 청년들이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큰 문화충격이었고 애정이 어린 청양을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준 프로젝트다.
나는 2기 활동 소감에 "어쨌든 나는 열심히 살아가는 청양 사람들이 좋았고, 그래서 청양에 남았다"라고 적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리고 2026년 서울로 떠난 지금도 여전히 청양 사람들과 로컬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특히나 2025년 하반기부터 순식간에 불어닥친 AI 열풍 속에서 더 테이스트 에디트 프로그램의 사회적 필요성을 느낀다. 그 지역을 직접 찾아가 생산자들을 만나는 경험이 콘텐츠 제작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도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고 있다. 계절이 바뀐다고 작물이 저절로 자라 식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정성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초가공식품에 익숙한 현대인들이 한 번쯤은 몸으로 느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농부들은 미디어가 그리는 자연처럼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와 그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시혜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인식의 되돌아봄도 필요하다. 농부들은 고집스러울 만큼 농사에 대한 신념이 확고하다는 것을 에디터 활동을 포함한 청양에서 청년 활동가로 여러 농부를 만나며 가장 크게 깨달은 것이다.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1년의 시간이 물거품이 되는 환경에서 그들은 마을에 몇백 년이나 자리 잡은 두꺼운 느티나무처럼 단단했다. 그래서 때로는 외롭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처음엔 낯설고 서툴러도 누구보다 자신에 대해, 자신의 농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의 콘텐츠는 좋은 먹거리에 관한 이야기를 넘어 농부의 대변자 역할을 했다고 느낀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와 같이 관계인구를 형성하는 프로젝트가 지원사업 기간 이후엔 추억으로 사라지지 않고, 계속 이어져 ‘여기에도 재미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라고 언제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서울로 떠난 이유 역시 ‘로컬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일을 만들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보여 준 사람들이 모두 서울에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후속 사업이 이어진다면, 내가 참여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함께하고 싶다.
| 사진: 황승택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