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Work]더 테이스트 포럼_식(食)의 해안선을 넘다


The Taste Forum

지역음식 시연회 & 저녁 식사_제주 낭푼밥상


식(食)의 해안선을 넘다


내가 먹었던 음식들이 정말 이 지역의 맛일까?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음식입니다. 인터넷 조사는 물론이고 최근에 그 지역을 방문했던 지인 추천도 받고는 합니다. 이 때문에 여행에서 음식에 실패한 적이 드뭅니다. 하지만 종종 의문 하나가 떠오릅니다. ‘내가 먹었던 음식들이 정말 이 지역의 맛인가?’ 물론 맛이란 시대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므로 쉽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역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이라는 건 어딘가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청양 더 테이스트 포럼에서 만난 낭푼밥상의 음식과 이야기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맛보여줬습니다.


제주 전통 맛은 그런 게 아니다.

'낭푼밥상'은 제주 향토음식 명인1호 김지순 명인이 50여 년간 고집하며 지켜온 제주 전통 식당입니다. 특히 이번 행사는 김지순 명인의 아들인 양용진 원장(제주 향토음식 보존 연구원)이 제주에서부터 식재료를 직접 청양까지 가지고 와서 전통 밥상을 시연했습니다. 하얀 수염과 세월이 깃든 깊은 눈을 가진 양 원장은 셰프 이전에 장인의 면모에 가까웠습니다. 제주 음식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구전으로만 내려오던 제주 요리법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책 「제주식탁」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관광객과 한 달 살기 체험객을 대상으로 제주 전통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진짜 제주 음식은 화려하거나 자극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제주의 맛은 제주의 역사와 환경 속에서 버무려져 왔기 때문입니다.


제주의 역사를 음미하는 110분

• 낭푼의 역사

‘낭푼밥상’이라는 단어를 흘려들으면 ‘양푼에 차려주는 밥상이구나’하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낭푼’은 ‘양푼’의 제주도 사투리가 아니었습니다. 제주에서는 나무를 ‘낭’이라 부르고, 큰 그릇을 ‘푼주’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낭푼’은 ‘나무로 된 큰 그릇’이라는 뜻으로, 밥과 바다에서 갓 잡은 해산물, 뒤뜰 텃밭에서 바로 거둔 채소를 한데 모아 먹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됐다고 합니다. 논에서 나온 쌀보다 화산재 섞인 기름진 밭과 4계절 온난한 기후에서 자란 채소들로 가득 채운 낭푼. 이는 특히 바다 생업에 집중해야 했던 제주 여성의 빠르고 단출한 끼니이기도 했습니다. 이렇듯 낭푼밥상은 제주의 문화와 환경을 고스란히 담은 대표적 제철 밥상입니다.

• 지역음식 시연

청양에 오기 전 사전 조사로 제주도에서 낭푼밥상이 가지는 위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알 수 있었습니다. 소금과 후추 등을 제외한 98%의 음식 재료를 제주에서 조달하고, 이름만 들으면 어떤 음식인지 잘 알 수 없는 낯선 요리가 시연 전부터 기대감을 부풀렸습니다. 시연은 1가지의 전식과 6가지 본식, 그리고 마지막 2가지 후식까지 총 9가지 요리와 그에 담긴 이야기를 들으며 진행되었습니다. 갤러리에서 미술작품을 보며 듣는 도슨트가 귀와 눈을 즐겁게 해준다면 이번 시연은 눈과 혀와 후각 세포뿐만 아니라 귀까지도 즐거운 진정한 미식의 향연이었습니다. 


첫 시작을 알리는 음식은 채를 썬 무를 데쳐 메밀가루에 버무린 ‘진메물’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익힌 무를 사용한 요리는 입 안에서 스르르 녹는다면, 진메물은 메밀가루의 부드러움 속에 무가 가진 아삭함이 살아있었습니다. 잘게 채 썬 무의 식감이 혀끝 식욕을 툭 건드립니다.

다음은 푸른콩된장드레싱과 생채, 풀고치젓국무침, 감저조밥이 차례로 나왔습니다. 된장 드레싱이라 된장 맛이 나는 샐러드를 상상했지만 그건 편견이었습니다. 드레싱의 달큼한 맛과 쌉쌀하면서 짭짤한 세 가지 맛이 채소의 신선함과 어우러졌고, 풋고추의 아삭하고 매콤한 맛과 멜젖의 짭짤함이 서로의 맛을 더 풍성하게 돋우었습니다. 특히 제주도는 고추가 빨갛게 익기 전 병해충이 심해서 풋고추를 사용한 음식이 발달했다는 양 원장님의 이야기에 다시 한번 음식은 기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을 혀끝으로 깨달았습니다. 

본식의 마지막은 구쟁기적과 날초기구이, 돗궤기고사리지짐입니다. 소담스러운 도자기 그릇에 올려진 날초기구이는 한라산에서 자란 생표고를 살짝 간해서 구운 요리입니다. 조심스레 반으로 잘라서 입에 넣으니 고소하면서도 싱그러운 맛이 입안 가득히 차오릅니다. 구쟁기적은 제주 바다에서 잡은 뿔소라를 하나하나 꼬치에 꽂아서 그윽한 불에 천천히 구운 요리입니다. 쫄깃한 식감 너머로 진한 바다향이 서서히 차오릅니다. 본식의 대미는 돗궤기고사리지짐이었습니다. 제주흑돼지와 한라산 먹고사리를 메밀가루로 볶아낸 이 요리는 앞선 음식의 맛을 잊을 정도로 강렬했습니다. 특히 고사리와 메밀가루를 고기와 섞는 이유에 대한 양 원장님의 설명이 음식만큼 인상적이었습니다.

제주도에는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 공동체 문화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기가 부족할 때는 고사리와 메밀가루를 넣어 어떤 게 돼지고기이고 어떤 게 고사리인지 모르게 섞어 요리했다고 합니다. 고기 향과 맛은 돋우고 함께 먹을 수 있는 양은 늘리는 목적이었다는 점에서 제주 사람들의 따뜻한 지혜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재료를 섬세하게 직조하는 시간

행사 시연 중 같은 테이블에서 차분히 음식을 음미하는 한 분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예사롭지 않은 표정과 잔잔한 말투에서 음식에 대한 내공이 느껴졌기에 시연이 모두 끝나고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요청했고 흔쾌히 응해주셨습니다. 알고 보니 지역음식X연결 편을 발표하러 오신 임홍재 프로듀서였습니다. 조심스럽게 방금 참석했던 지역음식 시연에 대해 여쭤보니 간결하면서도 명확하게 답변해주셨습니다.

Mini Interview_참석자 임홍재 (다큐멘터리 ‘할머니의 레시피’ 프로듀서)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음식은 단맛과 짠맛을 강조하면서 더욱더 자극적이고 감각적인데, 지역 음식을 깊이 연구, 보존하는 분이 지금의 흐름과 반대로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더욱이 오랫동안 이 분야에서 한 우물만 우직하게 파온 분들이 하시는 이야기를 들으니, 그동안 놓쳤던 음식에 대한 섬세한 감각을 일깨우게 되었습니다.”


이름부터 낯선, 우리 안의 이국

웬만한 음식은 이름만 들어도 대략 어떤 요리일지 예상이 갑니다. 하지만 제주 전통 음식들은 처음 들었을 때 감이 잡히지 않았습니다. 특히 요리가 하나씩 나오는 게 아니라 한 상에 함께 나오면 누군가 설명해줘야 음식과 이름을 겨우 연결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재미가 있었습니다. 특히 이번 낭푼밥상은 이 음식이 왜 향토음식으로 정착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시간이라 더욱 유익했습니다. 특정 지역에만 있는 음식, 특정 환경 때문에 이어져 내려올 수 밖에 없었던 맛. 아마 혀끝은 잊어도 이야기는 뇌리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일반적인 미식의 정의입니다. 하지만 재료가 어디에서 왔고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 우리에게 왔는지 알고 먹는 일, 그 설렘을 음미하는 행위가 진정한 미식의 정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The Taste Edit - 황진욱 에디터

본 콘텐츠는 더테이스트 청양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는 더테이스트 청양의 로컬에디터 육성프로그램입니다. '나의 부캐, 로컬에디터'라는 부제처럼 꼭 지역에 이주하지 않더라도 주말 여유시간을 활용해 지역과 관계맺고 취재, 콘텐츠 제작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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