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재 농부의 포도

달콤한 포도를 위한 농부의 설계도

건축가처럼 철두철미한 농사 설계

올해로 귀농 10년 차인 오용재 농부는 원래 건축가였습니다. 아파트를 시공 현장에서 근무하며 꼼꼼함이 몸에 밴 농부는 포도나무 사이의 간격부터 꼼꼼하게 측정했습니다. 평균의 두 배 이상인 5m 식재 간격을 유지하는 이유는 더 당도 높은 포도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설계 이전에 입지도 따졌습니다. 오용재 농부의 포도 농장은 칠갑산 깊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위에 논도 밭도 농가도 없죠. 농사를 지은 적 없는 땅이기에 영양분도 충분합니다. 농업용수가 아닌 지하 암반수를 끌어다 쓸 수 있는 건 덤이죠. 농부가 농장 이름을 ‘자연을 품은 농원’으로 지은 이유입니다.

병아리, 거위, 칠면조와 함께 짓는 농사

아침 6시에 일어난 농부는 곧바로 농장으로 향합니다. 칠면조, 거위, 청계가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매일 아침 방사되었다가 저녁이면 돌아오는 농부의 농사 파트너들이죠. 잡초를 쪼아 먹고, 땅을 평평하게 골라주고, 벌레도 잡아먹는 동물들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농사를 짓습니다. 

| 병아리가 뛰어노는 포도밭

하지만 그런 파트너들에게도 포도만큼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포도 하우스에는 키가 작은 병아리들만이 들어가죠. 그 외에도 농부는 화학 비료 대신 톱밥과 버섯으로 만든 퇴비, EM, 은행 열매와 잎 등을 이용해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친환경적으로 토양을 관리합니다. 농장을 둘러싼 산의 토양과 다를 바 없도록 말이죠.

| 포도나무 아래 깔린 톱밥 퇴비

샤인머스캣보다 달고, 거봉보다 먹기 쉬운 포도

오용재 농부가 키우는 포도는 샤인머스캣 외 10종 이상입니다. 샤인머스캣은 9월 중순이 되어야 수확합니다. 일찍 출하하면 더 많은 값을 받고, 늦게 출하하면 무게가 올라가지만, 그 가운데, 가장 달고 맛있을 때 따야 한다는 원칙을 지킵니다. 그래서인지 농부의 샤인머스캣은 유난히 향이 깊고 달콤합니다.

올해 농부가 처음 소개하려는 포도는 BK시들리스입니다. 다 익으면 검붉은색을 띠는 BK시들리스는 평균 당도가 24 brix에 달합니다. 18 brix 이상이 나오는 농부의 샤인머스캣보다 달죠. 그 외에도 소평, 레드 클라렛 등 달달하면서도 껍질이 얇아 거봉보다 먹기 편한 신품종 포도들을 시험 재배하고 있습니다. 이 포도들을 직접 맛볼 수 있는 체험 농장을 운영하는 것이 농부의 꿈입니다.

| BK시들리스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농부의 바람

사실 오용재 농부는 포도보다 구기자로 유명합니다. 2020년 구기자 왕에 선정될 정도로 농사 기술을 인정받았죠. 하지만 그런 농부도 귀농 첫해에는 큰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그때 좌절하지 않고 곳곳으로 배우러 다니며 노력한 결과, 5년 만에 청양에서 손꼽히는 구기자 농사꾼이 되었습니다.

이제 포도 농사 3년 차에 접어든 오용재 농부는 여전히 공부합니다. 모두에게 인정받는 고당도의 맛있는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서죠. 그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소비자들이 이런 노력을 조금이나마 알아주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 바람으로 농부는 오늘도 해가 질 때까지 포도 농장을 지킵니다. 농사 파트너인 닭, 거위, 칠면조들과 함께요.

| 새로운 품종을 시험 재배하는 오용재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