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Work]더 테이스트 포럼_현무암 속에 묻혀 있는 원석


The Taste Forum

맛워크숍_철원맛남_철원 음식 문화 연구 및 로컬푸드 기반 메뉴


현무암 속에 묻혀 있는 원석


미식의 초입 

청양의 초입, 추수가 끝나고 남겨진 노오란 볏단 위에 하얀 서리가 차분히 내렸습니다.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 칠갑산 휴양랜드에 도착했습니다. 계곡 너머 오색 단풍이 뒤덮인 칠갑산은 오늘 이곳에 온 참석자들에게 풍경의 아름다움을 먼저 맛보게 합니다. 막 도착한 버스에서 내린 참석자들은 점심 식사가 정성스럽게 차려진 잔디밭을 향해 설레는 발걸음을 옮깁니다. 친밀한 사람들과 삼삼오오 모여 정성스럽게 차린 음식을 나누는 자체가 이미 미식의 시작이 아닐까 싶습니다.


철원 토박이의 귀향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맛워크숍 강의 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습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명절에 할머니 댁에서 익숙하게 듣던 기름 끓는 소리와 고소한 향기가 저를 반깁니다. 참석자들이 한 명씩 자리를 잡고 조금 기다리니 사회자가 더 테이스트 포럼의 취지와  맛워크숍 철원맛남 진행자 염혜숙 푸드디렉터를 소개해줍니다. 철원 토박이인 염혜숙 대표는 철원에서 10대를 보내고 서울로 진학한 후,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푸드 디렉터로 약 20년 이상 일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정작 고향인 철원이 식문화 측면에서 낙후되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지역을 위한 로컬푸드 관련 일을 하기 위해 귀향을 결심했습니다.



“철원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있나요?”


• 지역 

현무암으로 만든 그릇 안에 놓인 오대쌀 벼를 가리키며 염 대표는 말을 이어 나갑니다. 철원은 비옥한 현무암 용암 대지와 비무장지대(DMZ), 민간인 통제 구역 안에서 솟아나는 용천수 ‘샘통’ 등 천혜의 자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합니다. 또한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현무암 절벽과 주상절리 등 다양하고 아름다운 지형 때문에 2020년에는 한탄강 지질공원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세계적으로도 인정받았습니다. 그래서 매주 1만 명 이상이 철원을 방문한다고 합니다. 인위적으로 손대지 않은 그대로의 자연경관이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제공해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방문객들이 철원에 왔을 때 아쉬워하는 한 가지가 바로 먹거리라고 합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 철원 하면 바로 연결되는 음식이 없습니다. 또한 지역 문헌을 찾아봐도 음식 이야기나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철원의 음식 현주소라는 것을 염 대표는 고향으로 돌아와서 깊이 직면했습니다. 그렇지만 음식이 없을 뿐 재료가 없는 건 아니라는 점을 곧 깨달았습니다. 세계에서 인정한 자연환경이라면 철원만이 가진 색다르고 질 좋은 음식 재료가 분명히 있을 거라 믿고 그때부터 식문화 연구와 로컬 음식 조리법을 개발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철원 곳곳을 돌아다녔습니다.



• 재료와 음식

다양한 시도와 끊임없는 노력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주상절리 육전입니다. 부드러운 육질의 철원 한우를 다져서 오대쌀로 만든 쌀가루를 듬뿍 입혀 스몰 바이츠(small-bites) 형태로 바삭하게 튀겨낸 음식입니다. 육전의 주원료인 철원 한우는 평균 높이 1,000m 태백산맥에서 내려오는 깨끗한 물과 오염 없는 고산지대 환경에서 자랍니다. 이러한 자연환경은 철원 한우의 육질을 좋게 해 고기 고유의 맛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또한 춥고 긴 겨울, 큰 일교차, 기름진 황토 등 자연이 처음부터 끝까지 키운 쌀을 다시 가루로 곱게 빻은 튀김옷은 혀끝을 황홀하게 해줍니다. 


 

바삭하게 튀긴 육전을 완성해주는 것은 바로 물고추냉이 소스입니다. 우리에게는 와사비로 알려진 물고추냉이는 연중 서늘한 환경에서만 자라는 민감하고 까다로운 재료입니다. 그렇기에 민간인 통제구역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중 13.4도의 서늘한 용천수만이 고추냉이를 몇 년에 걸쳐서 서서히 키워낼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재배한 물고추냉이의 잎은 끓는 기름에 살짝 튀겨서 육전에 조심스레 올려놓습니다. 알싸한 맛을 품고 있는 바삭한 줄기가 육전의 부드러움을 한껏 살려줍니다. 물고추냉이 근경은 아낌없이 갈아서 육전 위에 뿌리고 마무리로 잣 한 톨을 중앙에 올려줍니다. 잣을 사용한 이유는 잣나무가 철원군의 군목이기도 하고 기름의 느끼함을 고소하게 잡아주며 시각적으로도 흑백의 조화를 더해주기 때문입니다. 조금 떨어져서 살펴보면 마치 현무암 절벽 위에 한 그루 자작나무가 서 있는 형상입니다. 특별한 날 방문한 파인다이닝의 전채 요리로 안성맞춤일 듯합니다.


• 푸드 마일리지 & 지오푸드

참석자들의 만족스러운 표정과 감탄 소리를 들으며 염 대표는 이야기를 마무리 짓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현재 철원은 음식문화 황무지일 수 있지만, 그렇기에 기회의 땅이기도 합니다. 특히 기후 위기로 탄소배출과 푸드 마일리지*가 대두되고, 단순히 SNS에 올리는 맛있는 음식을 넘어 의미 있고 재미있는 음식을 소비자들이 찾을 때, 주상절리 육전은 지오푸드**로써 철원의 음식 명물 1호로 자리 잡을 것 같습니다.

*푸드 마일리지(food mileage) : 식품이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이동하는 거리
** 지오푸드(geo food) : 지질명소의 지질적 특성과 문화를 모티브로 개발한 음식


Mini Interview_참석자 신선희 (무인 드론 회사 대표) 

워크숍이 끝나고 바로 옆자리에서 열정적으로 질문하고 의견을 이야기하셨던 분께 미니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우연히 청양군 병원에서 더 테이스트 포럼을 알게 되었고 좋은 먹거리와 이야깃거리를 찾아 고민 없이 철원맛남에 등록했습니다. 워크숍에 참여하고 나니 철원이 음식으로는 기회의 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이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해 조금만 특별하고 새로운 것을 하면 주목받고 지원받기 좋은 환경이라는 뜻이니까요. 철원을 방문하는 사람들도 기대 없이 오기 때문에 음식 재료와 스토리를 엮어 선보이면 좋겠습니다. 철원은 날것 그대로의 가능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곳이네요.”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

여행과 먹거리를 좋아하는 저도 철원 여행은 아직 한 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날 좋은 계절에는 굳이 철원까지 갈 이유가 없었고 겨울에는 눈 내린 풍경이 궁금했지만, 너무 춥고 음식이 마땅치 않아 선뜻 찾아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아마 같은 생각하는 여행자들이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이 철원의 현주소이자 가능성인 것 같습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음식 그리고 흥미로운 지역 이야기를 담은 콘텐츠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입소문을 타기 마련입니다. 철원은 여전히 미식•관광과는 먼 지역이지만, 이 워크숍 이후 사람들의 발길이 더 닿기 전에 빨리 철원의 날것 그대로를 누려야겠다는 조급함이 슬쩍 올라옵니다.




The Taste Edit - 황진욱 에디터

본 콘텐츠는 더테이스트 청양 사업의 일환으로 제작되었습니다. 더 테이스트 에디트는 더테이스트 청양의 로컬에디터 육성프로그램입니다. '나의 부캐, 로컬에디터'라는 부제처럼 꼭 지역에 이주하지 않더라도 주말 여유시간을 활용해 지역과 관계맺고 취재, 콘텐츠 제작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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